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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다 논쟁에서 우리가 잊고 있는 것

Enkkidu 2023. 1. 16.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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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다와 관련한 사회적 논쟁에서 사람들은 흔히 혁신이냐 아니냐, 혁신이라면 혁신으로 인해 피해를 볼 계층을 어떻게 보호할 것이며, 택시업계의 이해관계와 새로운 모빌리티 사업자의 이해관계를 어떻게 조화시켜야 하느냐의 문제만을 이야기하지만, 이러한 논쟁에서 의외로 간과되는 문제가 있다.
 
 
우리나라의 국민들에게, 기사가 포함된 렌터카를 빌릴 권리가 있는지, 또는 있어야 하는지에 관한 문제다.
 
 
 
주변의 지인들에게 "국민들에게 기사가 포함된 렌터카를 빌릴 수 있는 권리가 있어야 하느냐"라고 물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당연히 있어야 하는 것 아니야?"라는 반응을 보인다. 요즘은 베트남이나 태국 등 동남아에서 기사가 포함된 렌터카를 빌리는 경우가 많아서, 오히려 사람들이 기사가 포함된 렌터카의 편리성을 많이 인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 사람들에게 우리나라의 경우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제34조 제2항으로 인해 기사가 포함된 렌터카를 빌리는 것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고, 시행령에서 정한 예외에 해당하는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가능하며, 타다가 그러한 예외조항을 이용해서 사업을 하고 있는 것이라는 점을 설명하면, 법률을 잘 모르는 사람들도 재미있는 이야기라는 반응을 보인다.
 
타다와 관련한 이슈들에 좀 관심이 있고 알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는, "법률에서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는 것이라면 하지 말아야지, 예외조항을 이용해서 영업을 하는 건 편법 아니냐"라는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도 잘 알지 못하는 사실이 있다.
 
불과 19년 전인 2000년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기사가 포함된 렌터카를 빌리는 것은 "완전히" 합법이었다는 사실이다.
 
1999년 6월에 권익현 의원 등 27인의 의원이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개정안을 제안하는데, 그 제안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자동차대여사업자는 임차인에게 운전자를 알선할 수 있는데, 이를 악용하여 사실상 운전자를 고용하여 유상운송 즉 택시영업을 영위하고 있고 이로 인하여 택시사업자와 충돌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음. 따라서 자동차대여사업자가 운전자를 알선할 수 없도록 법률에 규정하여 자동차대여사업자의 불법영업행위를 법률상 근원적으로 방지하고자 함"
 
결국 렌터카사업자들이 운전자 알선 영업을 통해 택시영업에 피해를 주니, 아예 법률로 운전자 알선을 못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국회의원들은 사업자들 사이의 갈등을 택시업계를 편드는 "근원적" 해결을 통해 문제를 풀었다고 생각했지만, 국민들은 이 문제를 단순히 사업자들 사이의 영역 다툼 문제로만 바라보던 국회의원들로 인해, 그 전에는 완전히 보유하고 있던, 운전자를 포함한 렌터카를 빌릴 권리를 잃게 되었다.
 
이 개정안은 당시 논의되던 개정안들과 합쳐져서 1999년 12월 28일에 가결되는데, 소관위원회와 본회의를 거치는 동안 이 법률안의 적절성에 대한 제대로 된 토론이 한 번도 이루어진 바가 없다. 소관위였던 건설교통위원회 회의록에 적힌 아래 조진형 의원의 언급이 전부라고 할 정도이다:
 
"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중 개정법률안에서 요구하고 있는 안은 상당히 타당한 그런 것인데 그중 두 개 조항에 해당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 법안 만들 적에 삽입해 달라는 이런 요구를 하는 것입니다. 주요골자를 말씀드린다면 자동차대여사업자가 임차인에게 운전자를 알선할 수 없도록 하는 규정을 신설해 달라고 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자동차대여사업자가 운전자를 알선하는 경우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해 달라고 하는 이런 안이기 때문에 이것을 꼭 넣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말씀을 드리는 것이고..."
 
그냥 넣어달라고 이야기하는 이런 수준의 토론만을 거치고, 해당 조항은 일사천리로 처리되어 그 해 본회의에서 가결되었고, 그로 인해 국민들은 기사가 포함된 렌터카를 빌릴 권리를 하루 아침에 잃게 되었다.
 
민의를 대표하는 국회의원이라면 이러한 법률개정안을 검토할 때, 그러한 입법으로 인해 어떠한 부작용이나 의도하지 않은 영향이 있는지를 다각도로 살폈어야 하고, 특히 그러한 입법으로 인해 국민의 권리가 침해되거나 박탈되는 일이 없는지를 살피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에 해당한다.
 
국민들이 택시업계와 렌터카사업자들 사이에 일어난 분쟁의 근원적 해결을 위해 불지불식간에 기사가 포함된 렌터카를 빌릴 권리를 잃어버리게 된 후 19년이 지났다.
 
이런 경위로 졸속으로 입법된 조항이 과연 적절한 것인지, 이를 유지하는 것이 우리 사회와 미래, 국민의 권리를 위해 과연 바람직한지의 논쟁을 하여야 하는 시기에, 오히려 그 조항 예외의 폭을 줄이고 이를 법률의 수준에서 규정한다고 한다.
 
예외의 폭이 줄어든다는 것은, 결국 타다가 영업을 못하게 되는 것을 넘어 국민에게 그나마 예외적으로 허용된 기사가 포함된 렌터카를 빌릴 권리의 폭이 그만큼 줄어드는 것인데, 이에 대한 언급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이 문제를 사업자들 사이의 영역 다툼의 문제로만 판단하는 것은 본질을 놓치는 것이고, 국민들의 기본적인 권리가 어떻게 보호되고 강화되어야 하느냐가 우선적인 판단 준거가 되어야 한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기사가 포함된 렌터카를 빌릴 권리, 그딴 권리 하나 없어도 사는데 전혀 지장 없다고.
그런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그런 당신의 무관심 속에 쥐도새도 모르게 박탈되는 당신의 권리, 우리의 권리는, 그것 하나에 그치지 않을 거라고.
 
 

*2019년 글인데, 지금도 유효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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