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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혁신의 전제조건: 우리는 우리를 책임질 준비가 되어 있는가?

Enkkidu 2023. 1. 14.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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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포함하여, 규제의 혁파와 보다 자유로운 ICT 환경을 주장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요즈음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는 방향이 있다.

 

Positive 규제(일반적으로 금지하고 허용되는 것을 규정하는 방식)에서 Negative 규제(일반적으로 허용하고 금지되는 것을 규정하는 방식)로,

Opt-in(사전동의) 규제에서 Opt-out(사후통제) 규제로.

개인정보의 보호에 초점을 맞춘 규제에서 개인정보의 활용에 초점을 맞춘 규제로.

 

대략적으로 위와 같은 방향이다.

 

진정 위와 같은 방향으로 우리의 ICT 환경이 발전한다면, 확실히 우리나라의 ICT 산업은 수많은 규제들을 뛰어넘은 창의적인 서비스를 시도하는 여러 스타트업과 대기업들을 발판으로, 크게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는 예상에 많은 분들이 동의하고 있다.    

 

그런데 그러한 예상 속에는, 아무도 대놓고 이야기하지 못하고 있는 불안이 깊이 자리하고 있다.

일부러인지 아닌지, 그러한 불안은 지금까지 계속 외면되거나 망각되어 왔다.

 

그 불안은, 우리가 바꾸고 싶어하는 그러한 방향의 세상에서는, 결국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더 책임져야 할 것이라는 불안이다.

 

Positive 규제와 Opt-in 규제가 상징하는 것은, 국민들이 할 수 있는 행위는 국가가 정해준다는 생각이고, 이는 후견적 국가를 전제한다. 정보와 정책에 대한 이해력이 충분하지 못한 국민이 피해보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국가가 후견적인 입장에서 국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일반적인 금지로 국민들의 무제한적인 접근과 활용으로 인한 위험을 차단하고, 예외적으로 합리적인 이유가 있는 경우에 국민들이 할 수 있는 사항을 개별적으로 판단하여 허용하겠다는 것이다. 국민들을 불확실성으로부터 보호하겠다는 건 사실 좋은 의도에서 출발한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이는 사실 과거의 권위주의 시대에 국민들의 자유를 제한하기 위한 정치적 목적에서 계속 강화되어 온 사고방식이다.  

 

우리는 위와 같은 규제를 쉽게 후견적이고, 권위주의적이고, 후진적인 규제라고 비난할 수 있지만, 반면 어떤 해킹으로 인한 보안사고나 개인정보 유출사고가 터졌을때 우리 언론은 바로 이렇게 국가의 무책임을 비난한다.

 

"정부는 이렇게 될 때까지 뭘 하고 있었나? 관계된 정부부처들은 손 놓고 있었나?"


이전에 예상하지 못했던 기술의 발달로 인해 발생하는 새로운 사고들의 발생과, 어쩌면 당연히 사전에 그러한 사고에 충분히 대처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한 정부의 미흡한 대처를 꾸짖는 식의 대응은 반복적으로 크나큰 사전규제의 산을 쌓아올려 왔고, 무엇이든 정부가 정해준 가이드라인이 없이는 어떠한 새로운 기술도 자신있게 개발하거나 활용하지 못하는 쫄보들의 생태계를 만들어 왔다.  

 

이제 더 이상 이러한 방식의 대응은 불가능하다. 정부가 신이 아닌 이상, 미래의 어떠한 새로운 기술이 어떠한 파급력을 가지고 영향을 미치게 될지, 당장 내일을 예상할 수 없는 환경에서 모든 사안을 사전규제로 미리 규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에 대해 많은 이들의 의견이 일치한다. 

 

그러면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미래에 우리가 올바로 대비하기 위하여 Negative 규제, Opt-out 규제를 원칙으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면, 우리는 스스로의 사고방식을 새로운 규제 환경에 맞게 바꾸어야 한다.

 

우선, 우리는 정부의 역할은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음을 받아들여야 한다.

 

새로운 기술을 현실에 적용하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의 사고는 필연적일 수 밖에 없음을 받아들이고, 사후라도 그러한 문제점이 시정된다면 그 정도의 혼란은 기꺼이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개인의 정보와 보안을 보호할 책임이 일차적으로 국가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ICT서비스를 이용하는 각 개인에게 있음을 자각하고, 그러한 정보의 제공에 있어 스스로 충분한 검토와 고민을 하며, 필요 이상의 정보를 다른 사람에게 제공하지 않도록 유의하여야 한다.

 

또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자로서는, 사후통제는 사전통제보다 그 위반에 대한 제재가 더 엄격하고 때로는 서비스나 회사가 없어질 수 있을 정도의 제재가 가해질 수 있다는 점을 잘 이해하고, 스스로에 대한 내부 컴플라이언스 강화와 외부 자문을 통해, 부여받은 자유를 잘 활용한 서비스들을 내놓을 수 있도록 스스로 충분히 준비하여야 한다.

 

요컨대, 우리가 갖고 싶어하는 새로운 규제 환경에서, 우리는 국가에게 우리를 책임져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를 보다 책임져야 한다.

 

"자유는 책임의 부재가 아니라, 나에게 최선인 것을 선택하고 책임지는 능력"이라고, 파울로 코엘료는 말한바 있다. 

 

우리는, 우리에게 최선인 것을 선택하고 책임질 준비가 되어 있는가?

 

더 많은 자유를 누리기 위해,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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